※ 이 글은 제가 네이버 카페 『퍼스트 코난』에서 2018년도에 작성하였던 단편 소설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원본 작성일시 ─ 2018. 04. 09 22:57
『 빨리 나아. 』
Written by. 오목한 식탁
코난은 현관문을 닫으며 4월이라는 날짜에 맞지 않게 쌀쌀한 날씨라고 생각했다. 해가 거의 떨어진 시간대라 그런지 찬 바람이 비교적 많이 불었다. 좀 더 두꺼운 옷을 입을 걸 그랬나. 코난은 작게 웅얼거리며 신발을 벗었다. 다행히 집 안은 춥지는 않은 것 같았다. 거실 입구에 놓여 있던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코난은, 들고 있던 비닐 봉지를 거실 탁자에 내려놓은 뒤 풀썩, 소리를 내며 소파에 앉아 몸을 기댔다. 창문 건너로 길가에 자라 있는 나무의 가지들이 바람 때문에 꽤나 큰 각도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광경이 보였다. 아무래도 뒤늦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듯했다.
"네가 지금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 타당한 근거를 세 가지 이상 제시하지 않으면 당장 쫓아낼 거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4월의 꽃샘추위는커녕 남극의 눈보라가 와도 못 이길 것 같은 냉랭함을 항상 담고 있는 그 목소리는 사실 코난에게 약간의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 코난과 말싸움―이라 쓰고 하이바라의 일방적인 갈굼이라고 읽는다―을 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하여간 기집애, 쌀쌀맞기는. 코난은 목소리의 발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적갈색 머리의 여자아이가 친절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박사님한테 아무 말씀 못 들었어?"
"어."
"그래? …박사님이 너한테 말씀하시는 걸 깜빡하셨나 보네."
"어쨌든 중요한 건, 네가 올 거라는 사실을 나는 전달받은 적이 없다는 거지. 한마디로 넌 지금 주거침입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고. 경찰에 신고해도 되지?"
뭐? 아니, 그게 뭔…! 주거침입죄까지 들먹일 상황인 거냐, 지금? 어이가 없어진 코난은 도끼눈을 뜨며 말했다.
"…야, 나는 여기 오면 안 되는 존재냐? 여기 오고 싶어서 왔을 수도 있지, 거 참 쩨쩨하게…!"
"그러니까 네가 여길 왜 오고 싶어 해? 집에 박사님도 안 계신데. 타당한 이유 없으면 당장 나가줘."
끄응…. 그래, 알았어, 알았다구. 으이구, 얘는 오늘따라 왜 이리 까칠해? 안 그래도 냉혈한 같은 녀석이 까칠하기까지 하니… 이거야 원, 집 바깥보다 안이 더 춥게 느껴질 정도잖아. 하긴… 뭐 지금 네 몸 상태라면 그럴 만도 하겠다만. 피식 웃으며 코난은 탁자에 내려놓은 비닐봉지를 들고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너 몸 안 좋다며. 감기를 심하게 걸렸나 봐?" 코난이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시며 말했다.
"…박사님이 그러셨어?"
"아, 그, 박사님은 네가 몸이 안 좋다고만 하셨고…, 사실 좀 전에 거실 쓰레기통에 감기약 봉지가 있는 걸 봤거든."
"어머나, 관찰력 좋기도 하셔라. 그래서 박사님이 네게 부탁이라도 하시던? 나 좀 봐달라고?"
"으응…. 뭐, 그렇지."
"박사님도 참… 쓸데없는 행동을 하셨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하이바라는 많이 아픈 상태였다. 펄펄 끓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상보다는 많이 뜨거운 이마, 비 오듯 나는 땀, 달뜬 숨이 섞여 나오는 가쁜 호흡이 하이바라의 몸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이 토요일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주중이었다면 학교를 조퇴했어야 할 정도로 하이바라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겉으로는 멀쩡히 서 있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아주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멀쩡해 보이는 듯한 모습은 하이바라의 포커페이스가 만든 결과물이었다. 하이바라가 언제나 유지하는, 모든 걸 숨겨버리는 그 포커페이스.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다. 커피 포트를 켠 코난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너는 그게 문제야, 하이바라.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척,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은 척하는 그게 문제라고. 코난은 비닐봉지 안에 들은 것을 꺼내다 말고 뒤를 돌아 하이바라를 보았다.
"…쓸데없는 행동이라니. 너 지금도 엄청 아프잖아. 다 티 나거든?"
"아, 그러셔? 내 몸 상태도 단박에 눈치챌 정도인 거 보니 그동안 나를 열심히 관찰하셨나 봐? 쿠도 군이 나한테 그렇게 관심있을 줄은 몰랐네. 어쩐지 네가 가끔 나를 변태 같은 눈으로 훑어본다 했더니, 그게 관찰하는 거였구나. 아니, 몰래 훔쳐본 거라 해야 하나?"
"훔쳐보긴 무슨! 야, 내가 언제 변태 같은 눈으로 너를…! 하아, 됐다.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 …넌 아픈 주제에 시비를 걸 기력은 있냐?"
"나는 시비를 건 게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너는 거기에 뜨끔한 거고. 안 그래?"
하, 하하, 하하하…. 요 녀석 보게. 진짜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네…. 아무튼 너의 그 독설도 연구 대상이다, 연구 대상. 어떻게 몸이 아파도 그 독설은 하나도 줄어들지를 않냐. 하이바라의 말에 일일이 말대꾸하다간 곧 화병이 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코난은 주제를 바꿔 말을 꺼냈다.
"…가끔은 좀 아픈 척도 하고 그래라."
"어머, 지금 나한테 충고해 주는 거야?"
"그래."
…제발. 제발 아픈 척 좀 하고 다녀. 속속들이 안다고는 말하지 못할지언정 이 냉혈녀와 길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다 눈치챌 수 있는 사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코난은, 하이바라가 겉은 차가워 보여도 속은 얼마나 여리고 사려 깊은지를 알고 있다. 더욱이 하이바라가 왜 겉으로 차가운 척, 괜찮은 척을 하게 되었는지까지도. 그걸 알기에,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싫어."
"네가 아픈 모습 보이고 싶지 않은 건 알겠…"
"어차피 네가 알아차려 줄 텐데. 굳이 아픈 척을 왜 하겠어?"
"…뭐?"
"내가 굳이 말을 안 해도, 초등학생 훔쳐보기 좋아하는 변태 탐정이 바로 알아차려 줄 테니까. 그래서 굳이 아픈 척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어."
가끔씩 멍청한 면이 있고, 변태에 추리오타쿠이기까지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탐정이 있으니까. 나를 잘 알고, 이해해주는 친절한 탐정이 있으니까. 하이바라는 새삼스레 코난이 고마워졌다. 비록 당사자에게 그 고마움을 온전히 표현하는 건 그녀의 입이 따라주지 않지만.
"그래, 뭐 다 좋은데… 초등학생 어쩌구 하는 거, 그거 설마 나 말하는 거냐?"
"다시 말해줄까? 초등학생 훔쳐보기 좋아하는 변태 탐정. 이게 너 아니면 누구겠어? 내가 보기엔 딱 넌데."
"…난 너 훔쳐본 적 없거든?"
"난 네가 나를 훔쳐본다고 말한 적 없는데? 단지 초등학생을 훔쳐본다 했을 뿐이지. 네 주위에 초등학생 여자애라면 많잖아? 아유미라든가…."
"…시비거는 거 이제 지겹지도 않냐."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시비를 건 게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너는 거기에 뜨…"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이제 그만 하자, 응?"
언제나 그렇듯이 둘의 말싸움은 코난의 항복으로 끝났고, 하이바라는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하이바라가 부엌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하여간 저 녀석, 귀여운 구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니까…"라고 투덜거리며 커피포트의 뜨거운 물을 컵에 따르는 코난의 뒷모습이 보인다. 흥, 가소롭긴. 네가 나를 이기려면 논술 학원을 적어도 오 년은 더 다녀야 할걸.
"…나라고 항상 알아차릴 수 있겠냐. 최대한 노력은 해 보긴 하겠다만… 내가 못 알아차릴 수도 있으니까. 그럴 때를 대비해서라도, 아플 때는 아프다고, 괜찮지 않을 때는 괜찮지 않다고 말을 해야 한다고."
불현듯 들려오는 코난의 목소리에 하이바라는 멈칫했다. 살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이래서 내가 너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니까. 너의 그 특별한 뜻 없는 친절함이 내게는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갖는다는 걸 네가 알까…? 헷갈리고 싶지 않은데, 자꾸 헷갈리게 만드는 바보 탐정이 싫다. 그러면서도 그가 베푸는 호의에 빠져든다. 부질없는 희망은 가지기 싫은데…. 그래도, 아직 내 옆에 그가 있으니까… 뭐, 일단은 그의 친절함을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할까.
"……그럴게."
하이바라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후훗, 넌 평생 모를 거야, 쿠도 군. 네가 나한테 있어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말이야. 코난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인 하이바라는 왠지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비록 박사님의 부탁이긴 하지만, 자신이 아플 때 그가 와서 돌봐준다는 사실이 하이바라에게는 너무나도 좋았다.
아마 모든 게 다 끝난 다음에 너는 그녀에게로 돌아가겠지. 그러니 그 전까지 널 많이 부려먹어야겠네. 이렇게 제멋대로여서 미안해. 너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하는 것도 정말 미안해. 내 마음을 네가 스스로 알아차려 준다면 좋겠지만, 둔탱이 탐정한테 그런 것까지 바라서는 안 되겠지…? 하이바라는 조용히 지하실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지하실에 갈 거면 미리 말을 하지 그랬냐."
코난이 컵이 올려져 있는 쟁반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왔다. 하이바라는 지하실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가 코난이 들어오자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계속 서 있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았다. 진작에 누워 있지, 참.
"아, 몰랐어? 나를 열심히 관찰하는 너라면 내가 지하실에 가는 걸 말 안 해도 알아차릴 줄 알았는데. 탐정이라면 그 정돈 기본 아닌가?"
"…자, 마셔. 꿀 생강차야. 아까 오다가 편의점에 들러서 샀어."
코난은 하이바라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차가 담긴 컵을 하이바라에게 건네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이바라는 코난의 반응을 내심 기대했으나, 별 반응이 없었기에 코난 놀리는 것을 그만두고 새침한 표정으로 순순히 컵을 받아 들었다. 컵 속의 차에서는 생강 특유의 알싸한 향이 났다. 하이바라는 생강차를 천천히 들이켰다. 살짝 달달하면서도 씁쓸하고, 알싸한 맛이 입 안에서 선연하게 감돌았다. 뜨뜻한 차가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요즘 해독제 연구를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쉬엄쉬엄 해. 네 몸도 챙기고."
"모 탐정 나리가 하도 닦달을 해서 말이지."
"…네가 언제부터 내 말을 잘 들었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코난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하이바라의 성격상 어떤 일에 매달리면 자기 몸을 버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내 어색하지 않은 침묵이 찾아온 방에는 하이바라가 간간이 홀짝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코난은 안경을 닦았고, 하이바라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음, 이런 분야는 자신 없는데. 내가 저 추리오타쿠라면 몰라도. 눈 딱 감고 한 번 도전해 볼까…? 한참을 고민하던 하이바라는 대뜸 말을 던졌다.
"박사님은 내일 아침에나 오실 텐데. 박사님 오시기 전까지 봐달라는 부탁이었어?"
"어. 아무래도 박사님이 네가 많이 걱정됐나 봐."
코난은 안경을 다시 끼고 물을 마시며 말했다. 불현듯 하이바라의 입가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매력적인 미소로도, 차가운 비웃음으로도 보일 수 있는 그녀 특유의 표정. 어머… 조금 반전인데, 추리광 씨? 하이바라가 입을 열었다.
"박사님이 걱정하신 게 아니라 네가 나를 걱정했겠지."
"푸흡!"
물을 마시던 코난이 당황해서 물을 뿜은 사실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한 채 하이바라는 말을 계속했다.
"박사님께 부탁 받았다는 말, 거짓말이지?"
"콜록콜록! 켁, 그거, 쿨럭, 어떻, 콜록!"
하지만 코난은 물을 뿜은 여파로 인해 콜록대느라 하이바라의 말에 대답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역시 가볍게 무시한 채로 하이바라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나는 박사님 앞에서는 웬만하면 아픈 티를 잘 안 내거든. 박사님은 아마 내가 아픈 줄도 모르셨을 거야. 그런데 네가 박사님 부탁을 받고 왔다고 해서 이상했지. 하지만 만에 하나 박사님이 내가 아픈 걸 알아차리셨을 수도 있었기에 그냥 넘어갔어. 두 번째로 이상했던 건, 네가 생강차를 사 온 점이었어. 분명 너는 내가 감기에 걸린 걸 이 집에 들어와서 쓰레기통을 보고 알았다고 했었지. 그런데 네가 어떻게 감기에 좋다는 생강차를 사올 생각을 했을까? 앞뒤가 안 맞는 너의 말에 나는 더더욱 의심이 갔어."
"…보, 보통 몸이 안 좋다고 하면 감기 종류잖아. 충분히 예, 예상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
기침이 드디어 멈춘 코난이 말을 더듬으며 엉성한 반론을 내놓았다.
"맞아,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런데 결정적 증거는 따로 있어. 어쨌건 나는 네가 매우 수상해서, 한 번 미끼를 던져보자고 생각했어. 그래, 박사님이 내일 아침에 온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었어. 그리고 놀랍게도 네가 미끼에 보기 좋게 걸려든 거였고. 박사님께 부탁받았다면서 박사님이 언제 돌아오시는지도 모르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래서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았어. …어때, 이 정도면?"
"……대단한걸."
하이바라의 명쾌한 설명에 아니라고 발뺌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코난이었다.
"내가 감기에 걸렸다는 건 금요일, 그러니까 어제 학교에서 안 거겠지? 물론 나를 변태 같은 눈길로 몰래 관찰하면서 말이야."
"…너 자꾸 그런 말 할래?"
"뭐, 어쨌든 오늘 일로 한 가지를 확실히 알았어."
"……뭐를 알았는데?"
"네가 나를 열렬히 사랑한다는 거."
띵! 코난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무슨 헛소리냐니? 딱 봐도 그렇잖아. 박사님께 부탁받았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나를 간호하러 온 거 보면 쿠도 군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누구라도 다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전혀 아니거든! 나, 난 그냥 네가 아파서 골골대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온…!"
"어머, 내 아픈 모습을 봐서 뭐하게? 설마 내가 아픈 틈을 타 덮치려는 생각이라도 했어?"
"……너 진짜…!"
"풋, 농담이니까 그렇게 찔려 하지 않아도 돼, 쿠도 군."
"이, 이익…. 으으, 너… 두고 봐."
하이바라는 얼굴이 벌게져서 말하는 코난을 보고 작게 웃었다. 후훗, 널 놀리는 일은 매번 색다른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놀리면 네가 삐치겠지?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할까…. 하이바라는 다 마신 컵을 쟁반에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그래도… 오늘, 고마웠어."
"…너도 고마운 걸 알긴 하는구나."
"당연하지. 누가 들으면 내가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사는 줄 알겠네."
"…설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네가 사소한 것에 너무 쪼잔하게 구는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봤어?"
"나 정도면 마음이 엄청 넓은 편이거든?"
"그래? 알았어. 그렇다는 걸 인정하도록 노력해 볼게, 쿠도 군. 많이 힘들겠지만."
……하여간 한마디도 안 져요.
"그나저나 벌써 일곱 시인데, 이제 가야 하지 않겠어? 그녀가 너 보고 싶어할 텐데. 박사님은 내일 아침이 아니라 30분 뒤에 오시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그래."
코난은 쟁반을 들고 일어섰다. 하이바라는 몸이 한결 나아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몸이 따뜻한 것이 기분이 좋았다. 생강차의 효능일까, 아니면 '그'의 효능일까.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하이바라에게 중요한 건 그가 그녀를 위해, 그것도 누군가의 부탁이 아니라 그 스스로 와 주었다는 점이었다. 후후… 센스가 많이 늘었어, 탐정님?
"아까 생강차 사면서 유자차랑 죽도 같이 사놨으니까 박사님 오시면 해달라고 해서 먹어. 그리고 오늘은 빨리 자고."
"네가 이렇게까지 애원하니까, 그렇게 하도록 할게."
"애원은 무슨…. 그럼 나 간다."
코난은 지하실을 나섰다. 쟁반과 컵을 싱크대에 넣고 박사님 집을 나온 코난은 탐정 사무소를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풋, 내가 생각해도 이상해. 아무리 파트너라지만… 저런 귀여운 면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녀석을 이렇게나 신경쓰고 있다니…. 정말 내 머리가 어떻게 된 걸지도 모르겠네. 피식 웃는 코난의 그림자가 가로등을 만나 길게 늘어졌다.
"어쨌든, 빨리 나아라. 하이바라."
휘잉, 서늘한 바람이 코난의 몸을 기분 좋게 스치고 지나갔다.
END.
* 2018.04.14, 02:14 - 1차 수정. 문맥, 어휘 조금 다듬었습니다. 추후에 좀 더 수정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2018.04.20, 23:13 - 2차 수정. 띄어쓰기 및 오타, 어휘 수정
* 2019.08.06, 01:47 - 3차 수정. 최후반부의 코난과 하이바라의 대화 부분을 좀 더 매끄럽게 수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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