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제가 네이버 카페 『퍼스트 코난』에서 2017년도에 작성하였던 단편 소설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원본 작성일시 ─ 2017. 07. 21 23:10
* * *
세상에는 나 혼자 남았다. 그동안 네가 있었기에 나도 존재할 수 있었다. 네가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모든 것이 끝난 지금 너는 아주 멀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없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기억해 줄 때 삶의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은,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잊혀진 세계
Written by. 오목한 식탁
그 어떤 것도 너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너의 부재로 인해 뚫려버린 내 마음 속 빈 공간은 너를 제외한 그 어떤 것으로도 완벽히 채워지지 않았다. 너를 볼 때마다 쿵쿵거리며 격렬하게 반응해왔던 내 심장은, 이젠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싸늘하게 식어만 간다. 너의 빛나는 모습을 담았던 나의 눈동자에는 텅 빈 공허함만이 가득 차 버렸다.
'꼭… 가야 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잘 될 테니까.'
'이건 네가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라,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야. 나도 가야 해.'
'내가 널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넌 여기 있어. 무사히 돌아올게.'
너는 자신만만하게 집을 나섰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네 곁을 지키려 했지만, 너는 기어코 나를 떼어놓고 떠났다. 너는 FBI와 공안과 함께 '그들'을 잡기 위해 떠났다. 나는 그저 네가 무사히 돌아올 거라고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 항상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던 그였잖아. 이번에도 모든 것을 깔끔하게 해결하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입가에 띄우면서 돌아오겠지.
'……에도가와 군이… 죽…어요?'
'……미안하구나.'
FBI의 조디 수사관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 꿈일 거야, 라며 현실을 도피해 봤지만 그럴수록 늘어나는 건 마음의 공허함뿐. 결국 몇 분 지나지 않아 나는 정말로 다시는 너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네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결국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지도 몰랐다. 분명히 그 때 나는 너를 막았어야 했다. 온몸으로 막아서라도 네가 가는 것을 제지했어야 했다. 뒤늦게 후회를 해 보지만, 그 후회는 곧 눈물로 바뀌어 눈앞을 가렸다. 하지만 네가 사랑했던 그녀의 오열하는 모습을 보자 눈물은 멈췄다.
그녀는 너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너의 시신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차갑게 식어버린 너를 껴안고 목 놓아 오열했다. 나는 그녀의 들썩이는 등을 아연히 바라보다 돌연 무언가에 쫓기는 듯이 병원을 뛰쳐나왔다. 나는 그녀에게 있어서 너를 죽인 살인자나 다름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그저 너를 좀 더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너무나 과분한 소망이었던 걸까. 너를 네가 사랑하는 그녀에게로 돌려보내지 않아서 신이 내게 내린 벌인 걸까. 시간을 멋대로 바꾸어버리는, 자연을 거스르는 약을 만든 것에 대한 대가인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죽는 것은 왜 내가 아니라 너인 걸까. 왜 나로 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녀까지 고통스러워야 하는 걸까. 난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나는 나 자신을 한없이 원망했다. 이런 와중에도 너를 그리워하는 나는 참으로 이기적인 여자였다. 그렇지만 네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보고 싶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닿을 수 없는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네가 보고 싶다. 어떤 어둠이라도 포근히 감싸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너의 미소가 보고 싶다. 화창한 하늘처럼 푸르게 빛나던 너의 깊고 맑은 눈동자가 보고 싶다.
그립다.
어린아이 같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비치던 너의 얼굴이 그립다. 모든 진상을 파헤치는 명쾌한 너의 목소리가 그립다. 몇 겹의 안개로 둘러싸인 진실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던 너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립다. 그러나 나를 세상으로 이끌어 주었던 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도망치지 마, 하이바라.
네가 없는 하루하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운명에서, 도망쳐서는 안 돼.
네가 없는 이 세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녀석, 보기보다 세지 않으니까요.
네가 없는 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네가 없는 나는 그저 거짓으로 채워진, 어둠뿐인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너는 내 삶의 이유였고, 이 세상의 전부였다. 네가 없는 세계는 허황된 세계에 불과했다. 난 이 공허한, 텅 빈 세계에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는 나날들을 하염없이 보냈다.
* * *
검은 조직을 완전히 궤멸한 것은 너를 희생한 결과였다. 검은 조직은 모조리 잡혀 들어갔고,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사건은 너를 포함한 몇 명의 사상자가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문제없이 종결되었다. 신문과 뉴스는 한동안 이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하지만 세상을 뒤흔들었던 대부분의 사건들이 그랬듯이, 이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때 세기의 명탐정이었던 너의 존재와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사람들은 마치 검은 조직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다. 네가 있던 세계는 이제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잊혀진 세계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너를, 네가 있던 세계를 잊지 않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네가 있던 세계를 머릿속에 되새기고 또 되새길 것이다. 그리고 나로 인해 고통받았을 너를, 너의 그녀를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과연 언제쯤이면 너에게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과연 언제쯤이면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너를 생각하며 밤을 지새운다.
END.
◇ 작가의 말
사실 '잊혀진'은 이중 피동 표현으로서, 엄밀하게는 틀린 표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문학적 허용 차원으로서 사용하였어요. 이 점 양해 부탁드려요. '잊혀진' 외에 틀린 맞춤법이나 오타에 대한 지적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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