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제가 네이버 카페 『퍼스트 코난』에서 2017년도에 작성하였던 단편 소설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원본 작성일시 ─ 2017. 09. 08 17:35
『 하교가 늦어질 때 』
Written by. 오목한 식탁
"…를 해 봤나요, 여러분? 자, 그럼 같이 답을 확인해 볼까요? 귤 일곱 개에서 귤 네 개를 빼면……."
하아, 못 해 먹겠네. 코난은 코바야시 선생님이 앞에서 열심히 수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겨워 죽을 것 같은 뚱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겉은 평범한 초등학교 1학년―사실 코난이 평소에 하는 행동들을 보면 평범해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겉모습은 평범하므로―이지만 실제로는 고등학생 탐정 쿠도 신이치인 코난에게 초등학교 1학년 수업, 그것도 점심을 먹고 난 5교시 수학 수업은 너무나도 지루하고 졸렸다. 이 수업이 끝나기까지 앞으로 30분이나 더 기다려야 하다니. 시간 진~짜 느리게 가네. 몇 번을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 이 지루함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에는 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런 걸 배웠었지, 하고 추억을 되새기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고…… 휴우.
"수업이 지루하신가 봐, 헤이세이의 홈즈 씨?"
코난이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을 때, 코난 옆에 앉아 있던 하이바라가 말을 걸어왔다. 코난은 계속 앞을 바라 본 채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어. 지루해 죽을 거 같다. 넌 안 그러냐?"
"응. 난 지루하지도 않고, 죽을 것 같지도 않아. 그리고 사람이 지루하다고 해서 사망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 보는데? 아, 이제 네가 죽으면 사인(死因)이 '지루함'인 최초의 사람이 될 수 있겠네. 이거 의학계가 발칵 뒤집어지겠는걸?"
"…말이 그렇다는 거잖냐, 말이."
"말이 뭐가 그런데?"
안 그래도 수업이 졸려서 힘든데 너까지 이러기냐…. 오늘만큼은 제발 좀 참아 주라, 응? 코난이 도끼눈을 뜨고 하이바라를 째려보자, 하이바라는 피식 웃으며 다시 수업에 집중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나처럼 엄청 지루할 텐데 어떻게 지루한 티를 안 내는 거지…? 하여간 이런 거 보면 신기한 녀석이란 말이야. 코난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이바라를 바라보았다. …하이바라가 코난을 놀려 먹는 재미로 수업 시간을 버틴다는 사실을 코난은 알 턱이 없었다.
"……온다. 나 우… …고 왔는데!"
"…게. 어제 …에는 비 안 온다고 했는데."
"히히, 난 우산 있지롱!"
"나도 좀 씌워 주라~."
……어라, 내가 언제 잠에 빠졌던 거지…. 자기도 모르게 졸고 있었던 코난은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그렇게도 꼼짝 않던 분침이 어느새 수업이 끝나기 5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하이바라가 쯧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내더니 코난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학생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다니. 완전 불량 학생 다 됐네, 에도가와 군?"
"자, 잠깐 졸은 것 가지고 불량 학생은 무슨! 난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오래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이라고."
"아, 그러셔? 어머나, 에도가와 군이 눈을 감았다 뜨는 데 걸리는 시간이 25분 남짓일 줄은 난 미처 몰랐네. 하긴, 지루해서 죽기까지 하는 에도가와 군인데 뭐, 이 정도 특이사항은 이해해 줘야지. 어쩌겠어, 착한 내가 널 이해해 줄 수밖에."
끄응, 잘못 걸렸군. 수업시간에 어쩌다 한 번 잔 걸로 아주 그냥 하루 종일 우려먹을 기세구만? 응? 그리고 뭐? '착한 내가'? 이 녀석은 양심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건가? 아니, 그 전에 어떻게 이렇게 얄미운 말만 골라서 하는 거야? 검은 조직에서 '얄밉게 말하는 법' 같은 것도 가르치는 건가? 휴우, 참자 참아…. 이럴 때는 말 돌리는 게 짱이지. 코난은 하이바라의 빈정거림을 애써 무시하며 말을 꺼냈다.
"그, 근데 애들은 왜 이리 소란스러운 거야?"
범인을 궁지에 몰아넣는 건 잘 하면서 왜 자기가 궁지에서 빠져나가는 건 영 젬병이실까, 쿠도 군? 하이바라는 자신의 말에 코난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살짝 웃었다. 내가 쿠도 군의 이런 모습 보는 맛에 산다니까. 하지만 겉으로는 티를 전혀 내지 않은 채 하이바라는 도끼눈을 뜨고 대답했다.
"너 지금 말 돌리는 거 엄청 어색―이때 코난의 몸이 움찔했다―한 거 알아? 뭐, 네가 졸다가 못 들은 것 같으니까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진 내가 알려 줄게. 지금 밖에 비가 오고 있어. …뭐야, 그 못마땅하다는 듯한 눈은? 조금 기분이 나쁜데?"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진'은 네가 봐도 좀 아닌 거 같지 않냐?"
"그 말이 뭐가 어때서? 딱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
코난은 당장에라도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저 뻔뻔함 좀 보게! 틀린 말이 아니긴 무슨…!
"…에휴, 말을 말자, 말아. 그나저나 비가 오고 있다고?"
"응, 그것도 엄청 많이."
하이바라가 가리킨 창문을 보자 정말로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비는 쉴 새 없이 창문을 때리며 투둑, 투둑 하는 소리를 내었다. 아아, 아이들이 웅성거리던 게 비 때문이었던 건가. 근데 나 우산 없는데! 분명 어젯밤 일기예보에서는 비 안 온다고 했었잖아…! 코난이 반을 둘러보니 우산이 있는 아이는 극소수였고 대부분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란한테 우산 좀 가져와 달라고 부탁해야… 아 맞다, 오늘 란은 가라테 대회 때문에 집에 없지. 젠장… 아, 혹시 하이바라는 우산을 가지고 왔으려나?
"하이바라, 넌 우산 가지고 왔냐?"
"어머, 설마 씌워 달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 '설마'가 맞는데……. 헤헤."
"미안하지만 나도 우산 안 가져왔어."
이런. 혹시나 했는데 역시 하이바라도 우산이 없었다. 하긴, 아침에 그렇게 화창했는데 우산을 가져온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윽, 그럼 집에 어떻게 가지."
"넌 탐정 사무소에 있는 그녀한테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면 되잖아?"
"란은 오늘 가라테 대회라 집에 없거든. 그래서 말인데, 박사님께 좀 부탁드리면 안 될까?"
"박사님도 발명품 수리 때문에 출장 가셨어."
으윽, 박사님이 하필이면 오늘 출장을 가실 게 뭐람. 코난은 낭패감을 느끼며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그때 마침 종이 울리며 학교가 모두 끝났다는 것을 알렸고, 종이 치자마자 겐타와 아유미, 그리고 미츠히코가 코난과 하이바라 곁으로 모여들었다.
"아유미 우산 안 가져왔는데…. 혹시 우산 가져온 사람 있어?"
"저, 저도 우산이 없네요. 어제 일기예보에서는 화창한 날씨라길래 믿고 있었는데…! 일기예보가 무슨 겐타 군도 아니고 이렇게 틀리다니. 오늘은 박사님도 발명품 때문에 멀리 가셔서 안 계실 텐데요…."
평소의 겐타였다면 "이 녀석이 뭐가 어째!"하며 발끈했겠지만, 오늘의 겐타는 평소와 다르게 그저 후후, 하고 자랑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뭐야, 얘가 웬일로 아무런 반응이 없지…? 코난이 의아하게 생각하던 차에 겐타가 크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후후… 난 틀리지 않았어! 나는 오늘 우산을 가지고 나왔다구! 음핫핫핫! 난 우산이 있다는 말씀이다! 크하하하하!"
"뭐야, 겐타~ 우산 있으면 아유미도 씌워 줘…!"
"일기예보보다 훨씬 똑똑한 겐타 상~. 저도 씌워 주시와요, 호호…."
코난은 그저 실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봐, 미츠히코… 태세전환이 너무 빠른 거 아냐?
"코난, 너도 우산 없지? 하이바라도? 캬하핫! 내가 너희 둘을 이겼다!"
…우산 가져온 거랑 이긴 거랑 무슨 상관인데?
"흠, 좋아. 기분이다! 오늘 내가 모두를 이긴 기념으로 너희들을 씌워 주마!"
"와아, 겐타 최고!"
"역시 똑똑한 겐타 군이네요!"
"근데 그 우산에 다섯 명 다 들어갈 수 있겠어?"
아이들 나름대로 들떠 있던 분위기―물론 상황과 어울리진 않았지만―를 단숨에 깨뜨려 버리는 이 차가운 목소리는 단연 하이바라였다. 겐타는 하이바라의 말을 듣더니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어어, 그러게…. 어쩌지?"
"음… 어쩔 수 없지. 그냥 너희들 세 명 먼저 가. 어차피 나랑 하이바라는 너희랑 집 방향도 다르고. 그 우산, 꽤 커서 어린아이 세 명까지는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 그럼 코난이랑 아이는 집에 어떻게 가려고?"
"나랑 하이바라는 탐정 사무소에 전화해서 우산을 가져와 달라고 해야지, 뭐. 아무튼, 우린 괜찮으니까 먼저 가."
탐정 사무소에 란은 없어도 아저씨는 계실 테니까 아저씨한테 부탁드려야겠군. 내키진 않지만… 코난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유미와 겐타, 미츠히코를 먼저 보냈다.
"그래, 그럼 우리 먼저 갈게! 미안해, 아이 쨩, 코난!"
"다 같이 가면 좋았을 텐데요…. 그럼 코난 군과 하이바라 상, 내일 봐요!"
"미안해! 다음에 비 올 때는 더 큰 우산 가지고 올게! 난 어서 집에 가서 엄마한테 부침개나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아냐, 괜찮아! 그리고 겐타는 부침개 적당히 먹고. 잘 가!"
여전히 거세게 내리지만 아까보다는 약해진 비 사이로 아이들이 멀어져 갔다. 운동장에는 탐정단 아이들 말고도 우산이 운 좋게 있던 아이들, 부모님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계시던 아이들이 하교를 하고 있었다. 코난은 아이들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코난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하이바라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건데? 탐정 사무소에 란도 없다며."
"아아, 그래서 코고로 아저씨한테 부탁하려고. 뭐, 아저씨가 좀 투덜거리시겠지만…."
코난은 휴대전화를 꺼내 모리 코고로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코난이 전화를 거는 사이 하이바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부모님이 데리러 오셨는지 이미 절반가량은 집으로 간 것 같았다. 그리고 학교에 남은 나머지 절반의 아이들도 하나둘씩 학교를 떠나고 있었다. 하이바라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꼬마 탐정을 바라보았다.
"아, 아저씨~ 저 코난인데요! 갑자기 비가 왔는데 우산이 없어서요, 헤헤. 란 누나도 가라테 대회 때문에 집에 없고… 그래서 아저씨가 데리러 오셨으면 하고 전화를……"
코난은 열심히 어린애인 척을 하고 있었다. 풋, 저럴 때 보면 진짜 영락없는 초등학교 1학년짜리라니까. 코난을 보던 하이바라는 슬며시 웃었다. 코난 본인에게는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웃음, 순수하게 기분이 좋아서 나오는 웃음이 하이바라의 입가에 조그맣게 걸렸다. 너에게 이 웃음을 보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음, 아마 나에게 이런 웃음은 안 어울린다고 하지 않을까. 아니면 혹시…… 내게도 조금은… 마음을 열어 줄까. …흥, 그럴 리가 없지. 너의 마음속에는 이미 '그녀'가 가득 차 있으니까. 밝았던 표정은 어느새 어두워지고, 올라가 있던 입꼬리는 살며시 제자리로 돌아온 하이바라는 왠지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자기만의 생각―코난은 '자기비하'라고 말하지만―에 빠져 있던 하이바라의 귀에 별안간 코난의 무척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살인 사건이요? 어디서요? 바, 박사님이 출장 간 곳에서요?!"
……뭐?
"…그래서 못 데리러 오신다고요……. 네, 알았어요…."
……그게 무슨…! 하이바라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을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 그러니까… 지금 박사님도 안 계시고, 란도 없고, 그 맹탐정도 없다…… 코난은 전화를 끊고 머쓱한 듯이 가렵지도 않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하이바라에게 말을 조심스레 걸었다.
"저… 하이바라. 그, 박사님이 출장 가신 곳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서… 아저씨가 거기 계신대…"
…살인 사건이 박사님이 가신 곳에서 일어났다, 라…. 이거 어째… 내가 아주 자~알 아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모 탐정 양반한테 일어나는 현상과 매우 비슷한 것 같은데. …하여간 탐정이라는 작자들이란 도움이 안 된다니까. 이제는 그 '죽음을 부르는 악귀'를 남한테 옮기고 다니기까지 하는구나, 아주? 이 바보, 추리 오타쿠, 변태, 탐정이라면서 내 마음도 모르는 둔탱… 아니, 이건 됐고. 뭐, 이번 기회에 이 사신님이나 실컷 놀려 줄까. 후후, 단단히 각오하라구, 쿠도 군?
…어쩐지 코난을 놀리는 데에 맛 들인 것 같은 하이바라였다.
"쿠도 군, 왜 그런 거야?"
"…으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박사님한테 '죽음의 기운'을 전염시켰잖아. 가는 곳마다 항상 사건이 터지는 괴현상은 죽음을 부르는 악귀인 너 같은 사람들한테만 생기는, 일종의 탐정 숙주 바이러스성 질병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탐정들은 탐정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악귀'를 옮길 수 있는 능력도 있나 보네? 혹시 악귀 예방 접종 같은 건 없니? 앞으로 너랑 같이 다니려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아, 이미 감염된 뒤라 소용이 없으려나?"
"이, 이보세요…."
코난은 하이바라의 맹렬한 비난을 힘겹게 견뎌내고 있었다. 으으, 나도 미안하다구. 그러니 이제 그만 비아냥거리면 안 될까, 응? 아니, 얘는 어떻게 된 게 겉모습은 초등학생 여자애인데 하는 말은 아주 독설가 저리가라네…! 그리고 탐정 숙주 바이러스라니, 감염이라니… 누가 보면 내가 전염병이라도 옮기는 줄 알겠네. 누구는 사건을 부르고 싶어서 부르는 줄 알아! 무, 물론 사건이 생기면 흐, 흥미롭기야 하지! 근데 탐정 일이 원래 그런 걸 어떡하라는 거야… 그렇게 혼자 속으로 열심히 구시렁거리고 있던 코난에게, 팔짱을 낀 하이바라가 그녀 특유의 도끼눈을 한 채로 말을 걸었다.
"자, 이제 쿠도 군의 다음 계획이 뭔지 아주 궁금해지는데?"
"…어, 아, 그, 그게……."
"경찰의 구세주라고 칭송받고 헤이세이의 홈즈라는 별명까지 있으신, 우리 미궁 없는 명탐정님께서는 당연히 이럴 경우를 상정해서 또 다른 계획을 세워 놓으셨겠지?"
"……."
"왜 말이 없으실까? 설마 비가 그칠 때까지 학교에서 기다리자―라는 아주 유치하고도 바보 같은 제안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졌다. 완벽히 졌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없어…! 어떻게 변명의 여지라도 만들어 보려 했더니만…! 코난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코난은 지금 궁지에 몰린 범죄자의 심정을 한껏 느끼는 중이었다. 잠깐의 침묵 후에 코난은 에헤헤, 하고 떨떠름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그 '설마'가 맞는 거 같은데…. 헤헤."
* * *
투둑, 투둑.
확실히 많이 약해진 비가 테이탄 초등학교 1학년 B반 교실 창문에 닿는 소리는 고요한 교실 안에서 조그맣게 울려 퍼진다. 은은한 빗소리에 둘러싸인 교실에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명의 아이들이 있다. 한 명의 아이는 마치 지금 이 상황이 불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없이 의자에 앉아 책상을 보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의 아이는 무표정이지만 어딘가 불만이 있는 듯한 얼굴로 창 밖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으으, 너무 불편한데…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 것 같고…. 아아, 신이시여,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불편해 보이는 얼굴의 코난은 실제로도 매우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둘 사이를 고요함이 가득 채운 지 20분이 지난 이 상황이, 코난에게는 엄청난 심적 압박으로 다가왔다. 코난은 지금 하이바라의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이바라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코난은 슬쩍 하이바라의 얼굴을 곁눈질로 보았다. 윽, 여전히 무표정이라니… 하이바라 특유의 냉소적인 무표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축되게 만드는 특성이 있었다. 확실히, 평상시라면 50분 전에 학교를 떠났어야 할 이 시간에 무표정인 하이바라와 단둘이 있는 것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여자애랑 단둘이 교실에 앉아 있는 것부터가 엄청 어색한 일이라구! 하필 오늘따라 괜히 더 어색한 것 같잖아! 설마 내가 하이바라를 신경 쓰고 있는 건가…? 말도 안 돼! 나 골탕 먹이기 좋아하고, 툭하면 나한테 시비 거는, 그 얄미운, 성격파탄 얼음마녀 하이바라를? 도대체 왜? 내, 내가 하이바라한테 관심 있는 것도 아, 아닌데! 아, 아니, 그렇다고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 으악!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공연히 애꿎은 머리만 세게 흔드는 코난이었다.
이,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모두 이 어색한 상황 탓이야! 그렇게 결론을 내린 코난―이때 그의 얼굴은 조금 빨개져 있었다―은, 너무나 조용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용기―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를 내어 자신이 먼저 하이바라에게 말을 걸기로 결심했다.
'나, 설마… 긴장하고 있는 거야…? 고작 내 마음도 몰라주는 저 추리 오타쿠 때문에?'
하지만 코난은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다. 하이바라는 화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다만 하이바라의 무서울 정도로 잘 유지되는 포커페이스가 그녀의 얼굴을 간신히 무표정으로 만들어 주고 있을 뿐이었다. 하이바라는 지금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상황―비 때문에 교실에 '그'와 단둘이 남게 된 상황―에 매우 당황한 상태였다. 그저 같이 있는 것뿐이지만, 같이 있는 사람이 그라는 점은 하이바라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하이바라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가슴이 진정되기를 바라는 것밖에 없었다.
비가 오는 창문을 보며 비는 언제 그치려나, 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사실 하이바라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비가 영원히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비가 영원히 그치지 않으면… 나는 너와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을 테니까…. 만약 비가 그친다면, 너는 곧장 그녀에게로 뛰어갈 테니까. 나는, 너와 그녀가 만나서 기뻐하는 모습을 봐야 할 테니까.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어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비가 조금만 더 와 주었으면. …푸훗, 내가 생각해도 너무 이기적인데. 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니, 미야노 시호? 하이바라는 자조적으로 픽, 하고 웃었다. 그래도, 그래도… 비가 그치지 않았으면, 내일도 이렇게 갑자기 비가 왔으면, 그래서 내일도 너와 단둘이 있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상념에 젖어 있던 하이바라의 귀에, 불현듯 코난의 어딘가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비, 비가 영 그칠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네. 아, 아까보다는 덜 오는 것 같긴 한데, 가기에는 아직 좀 무리일 거 같아. 좀 더 기다려야겠는데."
그렇게 말하는 코난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얼굴이 약간 붉어진 채로 하이바라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내가 진짜 오늘따라 왜 이러지… 코난은 왜인지 모르게 자꾸 얼굴에 열이 오르는 듯한 느낌에 매우 당혹스러웠다. …설마 내가 정말로……? 그때 코난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발갛게 된 하이바라가 입을 열었다.
"……뭐, 조금 더 기다리는 것도 나,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으, 으응…?"
"이렇게 단둘이 계속…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비가 그치는 것보다 훨씬."
END.
Epilogue
"그래서? '좀 더' 기다리면 갈 수 있다며? 그 뒤로 벌써 또 20분이 흘렀는데 나는 아직도 집에 못 들어가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네가 어떻게 해명할 건지 엄청 궁금해지는걸? 쿠도 군의 '조금'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기준과 다른 건가 봐?"
"……미안. 비가 이렇게 안 그칠 줄은…."
"아, 그러고 보니 쿠도 군은 눈을 감았다 뜨는 데 25분이나 걸리는 특이한 인간이었지? 쿠도 군 입장에서 20분은 '조금'이 될 수도 있겠네. 하지만 난 아니거든? 언제쯤이면 내가 갈 수 있으려나? 쿠도 군이 한 번 더 눈을 깜빡이면 갈 수 있는 건가? 어머, 그럼 앞으로 25분을 더 기다려야 된다는 소리잖아?"
"……."
◇ 작가의 말
여전히 일상물 쓰는 게 좀 어색하네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배치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게다가 전개가 조금 뜬금없어 보이기도;; 다른 분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겠네요...흠흠.
오타 및 틀린 맞춤법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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